강주희

신정란은 작별인사를 하지도 못하고 그녀의 가족을 이북에 남겨둔 채 떠나야 했던 그녀의 어머니의 일생의 심적 고통에 대해서 반추한다. 신상혁은 가족의 이별을 계속 진행 중인 끝나지 않은 한국 전쟁의 비극으로 이야기 하고 이런 분단의 슬픔이 해결될 것이라는 그들의 희망을 공유한다.

세대: 제 1세대
인터뷰 장소: 오클랜드 캘리포니아
인터뷰 진행자: 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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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억

한국전쟁 전의 삶은 해방되고서, 이제 한국으로 나와서 내가 살던 곳은 돈암동에 거기에 아주 토박이지 서울에. 그랬는데 그 후에 내가 중학교 일학년을 입학하자 전쟁이 육이오 전쟁이 났어요. 그래서 육이오 전쟁이 났을 적에 그 때 무슨 전쟁인가 하고 들어봤더니 삼팔선에서 사변이 무슨 사변이 일어났다. 이제 이런 소식이 들려왔거든? 근데 조금 있으니까 포소리가 들렸어요. 쿠궁 쿠궁. 이소리가 멀리서 들리거든요. 근데 거기서 이제 들려오는 거야. 그게 들려오는데 참 평온하게 살았는데 해방되고서 그러고 일제 때를 벗어나서 해방이 곧 되기 때문에 서울에는 그 삶이 어땠냐면 전차가 다녔어요. 그러기 때문에 일본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지명 그대로 다 쓰고, 무슨 황금정. 사정봉. 종로. 을지로 4가. 이런것도 황금정. 사정봉. 뭐 이렇게 일본말로 그렇게 쓸 때라고.

그렇게 할 때에 육이오가 났거든? 근데 포성이 들려오고 그러더니 야 소식을 들으니까 삼팔선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데 우리 국군이 북진한다. 뭐 이런소리도 들리고 그러더라고. 그러더니 포성이 자꾸자꾸 가까워져요. 그러더니 우리는 피난갈 생각을 하지를 않지. 왜냐면 이제 전쟁이 일어났어도 한국군이 이북을 처들어 갈 수가 있으니까 내려올꺼는 생각지도 않았지. 근데 비행기가 떴어요 정찰기가 비행기가 그 옛날 비행기 떠가지고서는 다니면서 육성녹음이 되가지고 그 소리가 들려오는데 그게 누구냐 하면 이승만 대통령의 육성이에요. 그래가지고 그 육성을 들으니까 가까이 내려오면서 방송을 하는데 그 분의 말소리가 특이하죠. 동포여러분 지금 우리 국군들이 북진을 한다던지 뭐 이런 식으로 잘 싸우고 있다던지 그러니까 여러분들 시민여러분들 안심하고 그대로 가만히 생업에 종사하라는 식으로 방송을 했어요. 그 우리 그걸 믿었거든? 믿었기 때문에 피난 갈 생각지도 않고, 인민군이 들어온다는걸 상상치도 않았다고.

아 그랬는데 그 날. 점점 가까워오더니 그 저녁인가 그 이튿날 저녁인가 내가 지금 그 때 상상을 잘 못하는데. 아마 바로 그때일 거 같아. 그 때 비가 좀 오기 시작하고 조금씩 구름이 끼고 그랬어요. 근데 포성이 점점 가까워 오더니 미아리 고개 그쪽에 어떻게 되었나면 미아리 고개가 있으면 산이 계곡이 짤려져 있어요. 계곡이 있어. 근데 그 계곡위에 그 산을 갔다가 등산을 타고서는 쭈욱 가는 것이 그 고려대학교 그 쪽으로 이어진 그 산악이거든. 근데 그 쪽으로 국군들이 막 올라와요. 올라와 가지고서는 거기다가 진을 치더라고. 그러니깐 이제 저지선을 만드는 거야. 근데 어쩐일이냐 하니까는 포성이 가까이 오는데 이제 막 후퇴한다는 거지.

근데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 전선으로 들어갔어요. 거기가 전선이 될 지 몰랐지. 미아리 거기 산악지대. 계곡 이런데가 전선이 될 지 모르고. 그리로 들어가서 이불하고 뭐 밥 해먹는 그릇만 가지고. 그리고 거기 가서 있었는데 조금 있으니까 군인들이 거기 꽉 차게 올라오는데 보니까 헌병들도 있고 그런데 무장한 군인들이 아니에요. 무장한 군인들이 아니고 그 맨모를 댄 사람들이 철모도 안쓰고 와서 막 모이는데 보니까 이상하단 말이야. 무장을 하고서는 전선에 와야하는데 무장도 안했어요. 그러니까 헌병하나가 뭐라고 하냐면 그사람들한테 막 책망을 하더라구요. 그래 당신네들 전선에 와서 싸우러 온사람들이 왜 무장도 안하고 오느냐 이렇게 물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대답이 뭐냐면 지금 다급해가지고 교육을 받다가 빨리 전선으로 나가라 그래서 무조건 그리로 실려왔다는 거에요.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거에요. 총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근데 이제 그 날 밤에, 그 날 밤을 세우고, 세우고서는 이제 낮이 밝아오기 시작하니까 국군들은 전부 도망쳐가지고 개인주택 이런데 들어가가지고 옷을 다 갈아입요. 그 때는 뭐 하얀 옷들이 많았거든? 뭐 좋은 옷도 없고 그런 걸 변장하고 갈아 입고. 군복을 다 벗어버리고 전부 도망가는 거지 도망가고. 뭐 총알이고 뭐고 이거 있잖아요. 그런 것도 다 옆에다 버리고. 우리가 다 주었어요.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그 탱크소리가 나는데 미아리 고개 거기서 부터. 들들들들 하면서 탱크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그냥 막 지축으로 울려요. 그냥 오더라고. 그래서 우리는 겁없이 거기 내다보니까 탱크가 내려오는게 보여요.

또 그 시내에는 시체가 아주 즐비하게 쌓여있고 그러고 이제 그 다음에는 이제 먹을 것을 구하러, 먹을 것을 갔다가 구하러 가도 돈이 있어도 쌀을 못사요. 아무것도 못사요. 쌀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근데 먹을거가 어디 있나 하고서는 구하러 배회를 하는 거지 서울시내를. 하다보니까 거기가 수도육군병원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말로는 수도육군병원인지 서울대학무슨 대학병원인지 모르겠어요. 근데 이제 거기 가다가 보니까 그게 월남동쯤 되나 어디쯤되나 모르겠는데 기억이 안나는데 그때 오래되고 어려서.

다시 서울로 와가지고서는 여의도 비행장. 그때는 여의도 비행장이거든요? 영등포비행장이 있었는데 거기가 그 십팔미군전투비행단이 그 주둔했어요. 그래서 거기서 이북으로 출격하고. 이제 전쟁을 하는 거지요. 그런데 거기에 내가 들어가 있었어요. 그 소위 그 때 당시에 하우스 보이라는 거지요. 하우스 보이라는 거. 이 하우스 보이로 들어가지고서는 그 미군들 파일럿들 그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으면서 그냥 뭐 온갖다 혜택을 받았어요. 그냥 선물도 받고 뭐 좋은 음식도 제공받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굶고 먹을 거 없어가지고 야단인데 나는 이제 그런 혜택을 받았지요.

근데 그러면서 그 비행기가 출격하잖아요? 그러면 우리 그 파일럿들 같이 있는 천막에 같이 있는 파일럿들이 출격을 할 때는 거기서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해요. 갔다가 죽을지 안올지 모르니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가거든. 그럴때마다 우리는 나가서 이제 비행기 막 출격하면 뜨잖아요? 계속해서 몇 대 편도가 뜨고. 그럴때 구경하는 거야. 그런데 내가 이 같이 있는 파일럿들이니까 돌아오기를 비는거지. 그래서 조금 있으면 돌아오니까 전투가 한 몇십분 한시간 이면 이제 폭격하고 돌아오거든. 돌아오면 거기서 착륙하거던? 그럼 거기서 기다리는 거에요. 그러면 한 열두대가 갈 때에는 그냥 어떤때는 여덟대만 들어오고 한 두대는 안돌아와. 그럼 어떤날은 한 서너대도 안들어오고 그러니까 그냥 그거는 벌써 거사포 맞아서 떠러진 거지…그러고 어떤날은 또 기다리고 있는데 여러대가 갔는데 서너대가 안나오는 거야. 그 이상하다고 기다리니까 나중에 그게 늦게 도착을 하더라고요. 근데 이제 거기서 맞은 거야 폭격을 맞아가지고서 어느 부분이 파괴되고 그래서 이제 비상착륙을 하는 거에서. 그래서 이제 정상적으로 착륙하는게 아니니까 막 부딪혀가지고서는 불이나가지고 소방차가 막 가서 그 ??

그다음에는 이제 그렇게 되니까 다시 피난을 피난지로 간거지 나는. 왜냐면 하우스 보이로 이렇게 일할 때 미군들이 일련의 자기의 비행 그 회수가 있어요. 전투를 백번 전투 그 에 나가서 하면은 그사람은 귀국하게 되어있다고. 백번까지. 근데 그 파일럿이 나를 미국에 대려가겠다는 거야 양자로. 데려가겠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 고아처럼 부모들이 없고 부모들이 있든지 누가 나의 보호자가 있으면은 내가 아마 미국간다고 그러면은 빨리 가라고 했을 거에요. 응? 참 이런 가운데서 죽을지 살지도 모르고 사람이 먹을 것도 없는 곳인데, 미국가면 호강 할 것 아니에요? 그럼 가라고 했을 텐데, 그때 어린 마음에 부모를 생각하고 나는 우리 어머니 못떨어진다. 죽어도 같이 죽는다. 그래서 나 안간다고 막 울면서 그냥 뿌리쳤지. 그 수속까지 다 했어요. 근데 양자로 간 사람도 많아요. 근데 나는 못갔어요. 못가고 나서 그 다음에 어디로 갔느냐 하면, 다시 피난지로 가서 그 대전으로 내려가가지고서 학교를 들어갔지. 근데 그때부터 이제 학업을 시작한 거에요.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