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섭

이준섭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 열네 살이었다. 그는 혹독한 겨울 가운데 1.4후퇴 동안 가족과 이별하면서 그가 경험한 공황상태와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세대: 제 1세대
인터뷰 장소: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인터뷰 진행자: 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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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억

우리 집은 이제 천호동인데, 지금 현재는 서울시에 들어가있죠. 거기가 워커힐 건너편이니까. 그런데 그 때 내가 거기서 중학교 다닐땐데. 그때에 전쟁나는게 뭐냐하면 제가 그때 여름이니까 집에서 심부름을 시켰다고. 오이밭에 가서 오이좀 따오너라. 그래가지고서는 이제 높은 산을 넘어가지고선 밭에 가서 거기 보면 워커힐 앞에 한강다리가 있다고. 광나루에. 옛날엔 광나루 다리라고 그랬는데. 막 오이를 이렇게 딸라고 그랬는데 세상 처음들어보는거지. 전쟁을 모르고 우리는. 왜정시대에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으니까. 그때 해방이 되었으니까 그때는 무슨 뭐 포소리를 못 듣고 해방이 되었으니까. 근데 6.25 나는 날은 막 가서 오이를 따고 있는데 6.25가 이미 나가지고 광나루 다리를 끊어버리는 거야. 그때 어떻게 놀랐는지 오이를 따다가 말고 다 팽겨치고 집으로 뛰어들어간게 새롭게 생각이 나고.

그 6.25가 나가지고서는 이제 한강다리를, 광나루 다리를 끊는 거지. 그러고 이제 학교에를 갔는데.

응 그 다음날. 전쟁이 났으니까 학교에 우선 가 본거지. 학교에 가니까 이층에서 이렇게 내려다보니까 그땐 참 그게 신기했다고. 어려서 중학교 2학년 때니까 마차를 끓고 거기다 짐을 싣고, 거기다 애들을 이렇게 엎고. 어떤 부인은 그냥 짐을 지고 애들을 그 위에다 얹고. 피난가는 걸 그 때 처음 보았다고. 그게 피난가는 거로구나. 근데 우리는 학교에서 이제 앞으로 나오지 말아라 전쟁 끝날 때까지. 그래서 이제 그걸 구경을 하면서 집에 간 생각. 그리고 6.25 때는 뭐 피난을 못갔으니까 그 이북아이들이 내려와가지고선 제일 지금 기억에 남는 거는 벼가 한참 이렇게 자랐는데. 벼를 그거를 뽑아가지고선 하나씩 세더라고. 그래서 그게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그걸 가지고 평균을 내서 쌀이 얼마나 생산되면 나라에 얼마를 바쳐야 하는지를 계산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그게 아주 생생했고. 그리고 밤이면 항상 젊은 사람이고 사람들 모아놓고 김일성 노래가르치고. 그리고 뭐…

이제 6.25 중에는 그때는 여름이니까 여름한때는 그냥 뭐 우리 집안이 그냥 괜찮게 살았을 때니까, 잘 살았을 때니까 집에서 그냥 식구들이 6.25때는 피난나가는게 없었어요. 6.25 고 당시 여름에는. 별안간에 들어왔으니까. 그래가지고 집에서 지내고. 이제 우리 위에 형. 군대갈만한 나이. 그렇니까 스무살 이상 넘으면 굉장히 숨어 살아야 했다고 이북 아이들때문에. 그래가지고 뭐 방공호를 만들고 밤이면 산에가서 자고 그렇다가 결국은 못견디고 그냥 남쪽으로 각자들 거지꼴을 하고 피난을 간거지. 그래서 부산까지 형님은 가셨고. 우리는 이제 이 얘기 듣기로는 맥아더장군이 인천에서 상륙작전을 하는 바람에 서울이 수복되는 바람에 우리는 이제 인민군한테서 해방이 되었지. 그리고 이제 피난갔던 사람도 올라오고 우리 형제들도 만나고 이랬는데.

그때가 이제 겨울이 되었어요. 그래가지고 군인들이 압록강까지 갔다가 중공군이 들어오는 바람에 후퇴한다고 그래서 그게 인제 일사후퇴라고. 일월 십사일 후퇴를 하는데 그때는 이제 우리도 똑같이 내가 피난한사람들 마차타고 가던거 이상하게 봤던거 같이 우리도 이제 집안이 넓으니까 마차를 갔다가 네댄가 다섯대를 해가지고 거기다가 짐들 다 싣고, 집안들이 다 함께 같이 나가는데 새끼줄을 쭉 매고 잃어버릴까봐 줄을 붙들고. 사람이 워낙 피난가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래가지고 피난을 뭐 낮에도 걸어가고 낮아도 걸어가고 그렇다 보니까 어린 아이들 우리같이 열네살 먹은 아이들은 지쳤지. 그런데 밤인데 수원지나가지고 쭉 내려가는데 밤 한 열시쯤 되었어요. 그런데 졸면서 새끼 붙들고 쫒아가다가 오줌이 마려우니까 안보이는데 가서 오줌눈다고 새끼줄을 놓고 가서 오줌을 놓다가 잠결이니까 방향감각을 잃어버린거야. 그러니까 나는 안대려간거야 혼자. 식구들은 다 내려가고. 뭐 사람이 많으니까 올라가는 사람도 있고 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별사람이 다 있었으니까 그러다 보니까 짐을 못찾아가지고선. 식구들을 못찾아가지고 도로 정신을 차려서 백을 해가지고 식구들 이제 뛰어가는데 어디가 있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그때서부터 혼자 떨어져가지고 지내는 거지.

혼자 떨어져서 지내는데 그때 이제 피난 갈적에 집에 아버지가 식구마다 보따리를 만들어서 돈을 얼마씩 여기다가 잡아 메주었다고, 만일에 헤어지게 되면 그거가지고 생활하라 이래가지고 그게 요행이 있어서 내려갔는데 내려가면서 뭐 피난생활인데 사먹을 것도 없고 그렇니까 돈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거지. 그러면서 그때서부터 혼자 고생을 하면서 내려가는 거지. 그러면서 이제 잘 자리도 없고 그러면 어느 시골집에 가서 데려다 달라고 사정사정하면 혼자 떨어진 걸 아니까 불쌍하게 생각해가지고 재워주는 사람이 있는데.

한 번은 거기가 옥천인가 거기까지 내려갔는데 충북, 옥천. 거기까지 내려가가지고서는 잠자리가 없어서 어떤집에 가서 재워달라고 하니까 할아버지가 너 혼자 떨어졌구나 해가지고 나하고 같이 자자 해서 잠을 자는데 그 시골에는 이상하게 집이 이렇게 있으면 방이 하나 있고 그 위에 더 딸린 방이 있다고. 그럼 아래서 불을 때면 여기까지는 따듯한데 여기는 불이 안와서 그런지 굉장히 차요. 그래가지고 그 추운데서 떨면서 이불을 할아버지가 덮어주는걸 덮고 자는데 밤새도록 쥐들이 이리뛰고 저리뛰고 날리를 치더라고.

그때 우스운 소리를 하나 곁들이면 뭐냐면은 참 자고 있는데 뭐가 고 앞으로 뚝 떨어지더라고. 이렇게 떨어진 것을 만저보니까 이 똥그란게 무슨 덩어리야. 그런데 이렇게 냄새를 맡아보니까 굉장히 고소해요.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어. 그래서 이게 뭔가 하고 배가 고프니까. 그걸 입에다가 넣고 씹으니까 그렇게 세상에 고소한 맛이있는건 내가 처음 봤다고. 그래서 자 이게 뭔가 그러면서 참 고소한 것 이런것은 처음이다. 뭐 깨소금 이런것 같다 댈것도 아니야. 아침에 새벽이 되서 노인네들은 일찍 일어나서 나가더라고. 그래서 보니까 노인네들 안계실때 이렇게 보니까 메주가… 메주 알죠? 콩으로 이렇게 된장 만드는 것. 콩으로 해서 네모 번듯하게 해가지고. 방에다 이렇게 한 열 개인가 걸어놨더라고. 그러니까 쥐들이 밤새도록 그거 따다가 먹느니라고 왔다갔다 하고 천장에서 그래 그러는 거야. 그러다 쥐가 따다가 놓친게 내 앞으로 떨어진 거지. 그러고 보니까 그걸 먹었던 것을 보고 생각이 나가지고. 그 때 (웃음) 그러니까 나쁜 생각이지. 야 저걸 내가 메주 한 덩어리를 가져가면 잘 먹겠다 해가지고 서는 메주를 겉을 만져보니까 단단해. 그래 뒤를 만져보니까 부들부들 하더라고. 그래서 손가락을 넣어 이렇게 하니까 떨어지더라고. 그래서 그걸 호주머니에다가 넣어 놓고 그런 웃은 소리도 있었어요.

그래서 옥천까지 내려갔다가 거기서 도저히 내려가면서 살 수가 없겠다 해서 도로 돌아와서 난 혼자 집으로 오는 거야. 혼자 집에는 이제 쌀이 어디에 있고 김치도 그 때 겨울이니까 김장 해놓은 것도 있으니까 집에 가면 밥은 먹겠다 하고, 에이 집에가서 죽건 살건 가자 했는데 이게 미군들이 전진을 해 온 만큼 고만큼만 가지 그 다음엔 못간다고. 왜냐면 거긴 전쟁터이니까. 근데 어떻게 하다가 한 20일이 지났는데 거진 우리동네 가까이 보니까 가더라고. 그래서 그 때는 용기 무릅쓰고 전쟁터고 뭐고 몰래 숨어서 그걸 전쟁 그 판을 비집고 들어갔더니 인민군이 있더라고 아직까지 우리집 주변에는. 중공군들도 왔다 갔다 하고. 그런데 거기서 영 미군들이 수복을 못하더라. 그러니까 바로 한강 고 옆인데.

그렇죠. 집에 이제 몰래 들어간거지. 그래서 인제 집에 들어가가지고 아버지가 방공호 비슷하게 파논게 있었으니까 거기들어가서 비행기가 맨날 폭격을 하니까 그래서 거기서 들어가서 사는데 중공군이 온거야. 중공군이 와가지고 총을 딱 대더니 나오라고 그래. 말은 통하지 않지 중국말이니까. 손을 들고 나가니까 누구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 같아. 그래서 아무도 없다고 나 혼자라고. 그래서 이렇게 보더니, 등을 뚜들기더라고. 아주 좋은 사람이야 중국사람도. 그렇게 울며 불면서 나는 겁이 나서 드레 우는거지. 그러니까 걱정말고 여기 들어가서 있으래 비행기 폭격하니까. 그런 제스처를 쓰더라고. 거기 들어가서 있던 그 날 밤 밤새도록 미국비행기들이 와서 폭격을 하고 나더니 얘네들이 한강을 건너서 북쪽으로 도망을 간거야. 그때 이제 미군이 들어온거지. 그래서 수복이 되고 집안식구들도 그때 이제 오는 바람에 집안 식구들도 만나고. 이렇게 해서 산 게 내 전쟁 경험담이에요. 본 거.